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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수천 번 선을 그어준 이유, 말하지 못하던 아이가 처음 쓴 숫자 ‘2’
엄마가 수천 번 선을 그어준 이유, 말하지 못하던 아이가 처음 쓴 숫자 ‘2’

저는 중증 자폐성 장애 1급을 가지고 있는
중학교 3학년 박주환이라고 합니다.
저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감각장애와 실행증이 심해서 제 생각대로
몸을 움직이기도 어렵습니다.
지퍼를 올리는 간단한 행동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돌 무렵 "엄마"라는 말을 하며
세상과 대화를 시작할 때, 저는 일곱 살이 되도록 엄마에게 단 한마디도 건넬 수 없었습니다.
주환아
엄마 해볼래?
엄마 말은커녕 엄마와 눈을 맞추지도 못했어요.
저를 진단하신 한의사 선생님은 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는 마시고.
네?
밥 세 끼 잘 챙겨 먹이시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신경 쓰세요.
많은 전문가들이 저의 한계를 설명했습니다.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다른 사람이
제 가능성을 대신 정하게 두지 않았습니다.
주환아
엄마랑 해보자.
엄마는 어린이집에 다니던
제 손에 연필을 쥐어주셨습니다.
엄마와 선 긋기 연습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원하는 방향으로 선 하나 긋는 것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선 하나가 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높은 성벽 같았습니다.
저는 매일 땀을 흘리며
선을 긋고, 또 긋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다 놓고
"주환아, 먹고 싶다고
표현만 해봐. 선을 그어도 되고
어떤 식으로든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돼.
상관없으니까
표현만 해보자."
하시면서 저와 소통하려 하셨지만 저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으면서도 엉뚱한 곳을
바라보았고, 선도 마음과 다른 방향으로 그었습니다.
제 몸은 제 생각을 따라주지 않았어요.
주변에선 엄마에게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의사표현만 할 수 있으면 돼.
서툴러도 표현만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알아보고 도와줄 거야.
엄마가 멈추지 않으니
저도 멈추지 않고 엄마 손을 잡고
매일 열심히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다 엄마는 어차피 힘든 거라면
한글을 연습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셨어요.
하려고 하면 다 되는 거야.
우리는 할 수 있어.
엄마가 매일 해준 그 말을 믿으며,
저도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나는 할 수 있어.
나도 꼭 해내고 말 거야.
그래서 학교에도 갈 거야.
엄마는 틈이 날 때마다 제가 이상한 소리를 내든
딴 곳을 보든 상관없이 수천 권의 책을 읽어주셨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엄마가 읽어주시는 것을
다 듣고 있었습니다.
제가 표현하지 못해 알지 못하셨지만,
엄마 덕분에 저는 자연스레 한글을 익히고 책을 읽으면서
내면만큼은 장애가 없는 올바르고
깊은 아이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한글 쓰기 연습을 마치고 엄마는 스케치북에
질문을 써서 제게 물어보셨어요.
공부를 다 하고 먹고 싶은 것은?
1. 사과 2. 딸기 아이스크림
저는 연필을 잡고 아주 조심스럽게
숫자 하나를 썼습니다.
"2"

엄마는 제가 처음으로 스스로 쓴 숫자 2를 보시곤
깜짝 놀라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펑펑 흘리셨습니다.
아빠에게 전화해 제가 숫자 2를 썼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날 저는 좋아하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었습니다.
숫자 2는 제가 처음으로 제 마음을 세상에 보여준 말이었고
엄마가 처음으로 들은 아들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를 마친 엄마가
평소처럼 물었습니다.
주환아, 혹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엄마는 제 손 위에 손을 살짝 얹었습니다.
저는 엄마의 따뜻한 손을 느끼며
한 글자씩 제 마음을
써내려갔습니다.
"엄마. 이제 나도 할 수 있는 게
생겼으니까 엄마도 하고 싶은 거 좀
하세요."
저도 제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었는지 지금도 설명할 수가
없지만 저는 저의 소중한 첫 문장을
엄마를 위해 썼습니다.
엄마는 너무 놀라서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셨어요.
그리고 저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흐느끼셨습니다.

저는
그 한마디를 엄마에게 전하기 위해 수천 번, 어쩌면
수만 번 선을 그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필담으로 소통하는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지난해 저는 처음으로 글쓰기 공모전에 참가해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출판사의 연락을 받고
일 년 동안 매일같이 글을 써 책도 나왔습니다.
저는 글을 쓰려면 남보다 훨씬 긴 시간과 몇 배의 노력을
쏟아부어야만 하지만, 제가 쓰면 엄마가
예쁘게 타이핑해 주셔서 이렇게 글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저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불편해질까 봐
늘 조심하고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저를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도 생겼습니다.
저는
제 의지와 다른 행동을 반복합니다.
사람들은 저처럼 말하지 못하는 중증 자폐인도
깊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저도 압니다.
제 겉모습만 보면 제가 바보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저도 책을 읽고 감동합니다.
불의한 일을 보면 화가 나고, 부당한 일을 보면 슬퍼집니다.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의 고생을 걱정하며,
언젠가 엄마를 쉬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사람일 뿐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사람들이
사람의 마음과 가능성을 판단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엄마, 이제 나도 할 수 있는 게
생겼으니까 엄마도 하고 싶은 거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