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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굿판 음식 먹던 소년, 월드컵 영웅이 되다 – 안정환 레전드 인생 이야기
한강 굿판 음식 먹던 소년, 월드컵 영웅이 되다 – 안정환 레전드 인생 이야기
안정환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방송인으로서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와 미드필더다.
FIFA 월드컵에서 3골을 넣어 한때 아시아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32강 본선 1차전에서 박지성이 1골을 추가하면서 이 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었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32강 본선 2차전과 3차전에서 손흥민이 2골을 추가하면서 이 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다. 더불어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전 대륙을 상대로 A매치 득점에 성공한 선수이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16강 이탈리아전 골든골 포함 핵심 활약으로 한국의 4강 신화 주역
이탈리아 페루자, 일본 J리그 등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며 기술과 스타성을 겸비한 공격수로 인정받음
K리그 MVP(1999)와 득점왕 경쟁 등 국내에서도 정상급 공격수로 활약하며 전성기 입증

살 집이 없어서 돈암동, 흑석동, 신길동, 부천, 수원 등으로 초등학교 때 무려 14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옷이 한 벌밖에 없어서 일주일에 닷새씩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녔는데, 친구들이 놀리자 안정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똑같은 옷이 다섯 벌이야!”수원에서 이모 집에 얹혀 살던 시절,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무려 2시간 30분 거리를 혼자 통학했다. 얹혀살면서 새벽부터 학교에 간다고 부산 떠는 게 눈치 보여서, 밤늦게 몰래 남아 학교 창고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때 나이는 초등학교 4학년, 겨우 11살이었다.
항상 배가 고팠던 안정환의 꿈은 슈퍼마켓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흑석동 판자촌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는데, 자신을 키워준 외할머니는 안정환이 축구선수가 되는 걸 반대했다. 이유는 “가뜩이나 잘 못 먹는 애가 운동까지 하면 더 배고플까 봐”였다.
노량진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한강 둔치로 달려갔다. 옛날에는 무당들이 한강 주변에서 굿을 자주 열었는데, 굿이 끝나면 떡과 과일을 그대로 두고 갔기 때문이다. 안정환은 굿판에 남은 음식으로 허기를 채웠고, 그것마저 없으면 배추밭에 가서 배추 밑동을 뽑아 먹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오렌지를 안정환은 고등학교 청소년대표팀에 들어가서야 처음 봤다. 생전 처음 먹어본 오렌지가 너무 맛있어서, 남은 오렌지를 몰래 가방에 챙겨 외할머니께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도박에 빠져 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빚 독촉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안정환은 중고등학교 시절 아르바이트와 막노동을 하며 축구를 이어갔다. 심지어 지하철 5호선 목동역을 자신이 지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6학년 축구부와 달리기를 해서 이겨버렸다. 이를 본 감독이 “축구부에 들어오면 빵이랑 우유를 준다!”라고 해서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안정환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시합 끝나면 짜장면도 사 준다더라고요. 빵이랑 우유, 짜장면에 혹했죠!”은퇴 이후 K리그 홍보대사로 활동했지만 지원금은 0원이었다. 모든 활동을 개인 사비와 개인 운전으로 해결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상주에 갔을 때는 스태프와 팬들과 막걸리 파티를 하고, 시내 모텔 일반실에서 하룻밤 묵고 갔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 유명 대학들이 스카우트를 제안했지만, 안정환은 축구계에서 변방이었던 아주대학교를 선택했다. 조건은 “동료들과 함께 입학하는 것.” 1997년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마치고 귀국한 날 바로 이동해 대학축구연맹전 결승에 출전, 두 골을 넣은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이다.
이탈리아 구단 페루자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결국 방출당했다. 이유는 이른바 ‘괘씸죄’. 2002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살해 협박까지 있었고, 실제로 그의 차가 불태워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후 안종복 일당과 부산 대우에 배신당해 국제 소송까지 가게 되었고, 페루자에 380만 달러(약 35억 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돈을 갚지 못하면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미 연봉 대부분을 어머니 빚을 갚는 데 써버려 돈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안타까워했지만,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때 일본이 움직였다. 스포츠 매니지먼트사가 아닌 일본 연예기획사 PM이 나섰다. 결국 35억 원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J리그로 갔고, 시즌이 끝나면 예능과 광고에 동원되었다.
PM은 투자금을 회수해야 했기에 첼시, 라치오, 발렌시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샬케04, 블랙번 등 유럽 구단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최전성기였던 안정환은 결국 유럽 진출의 꿈을 접고 J리그에서 3년을 뛰어야 했다.
(경기 없는 날에는 회사로 출근해 연예인 스케줄까지 소화했는데, 그래도 97경기 50골을 넣었다!)
J리그 진출 3년 만에 요코하마를 우승으로 이끌며 35억 원의 빚을 모두 갚고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그때 나이는 이미 서른 즈음이었다. 나고야에서 30억 원 연봉을 제시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연봉 8억 원에 프랑스 메스로 이적해 유럽 무대에 복귀했다.
2007년 K리그 수원에 입단하며 7년 만에 국내 복귀. 수원 시절 2군 경기에서 가족을 모욕한 팬과 충돌해 중징계를 받았다. 모든 비난을 묵묵히 견디던 안정환이었지만, 가족 욕만큼은 참을 수 없었던 것. 관중석에 올라갔다는 이유로 1천만 원 벌금을 내고 사과문을 게시했다. 정작 문제를 일으킨 팬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욕 한마디도 안 했는데, 언론에서는 삐 처리하면서 욕한 것처럼 만들었다!)다롄에서 뛸 때는 연봉 일부를 고아원과 어린이 병원에 기부하고, 매달 직접 찾아가 봉사했다. 구단 차원이 아니라 혼자서 자발적으로 진행한 일이었다. 구단 용품을 가져가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옛날 생각 난다”고 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