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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함 쪽지 하나로 시작된 인생 역전 로맨스
사물함 쪽지 하나로 시작된 인생 역전 로맨스
이십 년 다 되어 가는 대학 시절에 있었던 일임…

복학하고 나서 오며 가며 마주치면서
괜히 마음이 가는 애가 하나 있었음.
어떤 과인지만 알고 있었고, 이름도 모름.
오며 가며
“오늘은 마주칠까?”
“마주치면 말 걸어볼까?”
이런 생각만 수백 번.
막상 얼굴 보면
말 걸고 싶은데 차마 용기가 안 났음.
입은 있는데 음소거 상태였음.
우리 과랑 그 애 과랑 같은 건물이라
오다 가다 우연히 그 애 사물함 위치를 알게 됨.
철제로 된 캐비닛 같은 직사각형 문,
열쇠로 열고 닫는 방식이었는데
막 쓰다 보니 문도 틀어지고
틈도 생긴, 세월의 흔적 가득한 낡은 사물함이었음.
사물함 위치 알고 나서
쪽지 넣어볼까 말까
며칠을 고민함.
‘말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싶어서
관심 있다고 간단하게 적고
핸드폰 번호랑 같이 쪽지를 써서
사물함 틈새로 슬쩍 밀어 넣었음.
넣고 나니까
울리지도 않는 핸드폰만
초조하게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연락만 하염없이 기다림.
이때는 스마트폰도 아니고
전화, 문자, 폰카 정도만 되는
자판 있는 핸드폰 쓰던 시절이었음.
연락 수단은 문자 아니면 전화, 둘 중 하나.
기억나기로는
햅틱이 풀터치폰으로 나왔는데
비싸서 못 샀던 기억이 남.
(부자는 역시 아무나 되는 게 아님)
이틀쯤 기다렸나?
연락이 왔음.
연락 오자마자
기분 좋아서 문자 주고받으면서
혼자 온갖 상상을 하며 행복해함.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말도 잘 통하고
답장도 바로바로 오니까
상상이 자동 재생됨.
문자 주고받다 보니
학교에서 보자는 얘기가 나와서
보기로 했음.
약속 날 손꼽아 기다리며
시간아 제발 빨리 가라… 하고 있었음.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옴.
문자해 보니
자기도 이미 와 있다는 거야.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쪽지 줬던 애가 아니라
전혀 다른 여자가 서 있었음…
너무 당황해서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는데
상대방은 그게
“나를 보고 너무 좋아서 얼어붙었구나”
라고 생각한 것 같았음.
그제야 깨달음.
내가 그동안 연락한 사람이
그 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허탈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옴.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까
그 애는 아니었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얼굴 반반하니 예뻤음.
(인생은 밸런스 게임)
당황스럽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밥 먹고 데이트하러 감.
이미 문자로 충분히 얘기를 해서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첫 만남인데도
생각보다 어색하진 않았음.
얘기하면 할수록 괜찮은 사람이었고
데이트 몇 번 더 하고
사귀기로 함.
나중에 알고 보니
여친 과는 인원수에 비해 사물함이 부족해서
신청자가 많으면
제비뽑기로 사물함 배정했는데
그래서 친구랑 같이 쓰고 있었던 거였음.
사귀면서
처음 만났을 때 자기가 그렇게 좋았냐고
넋 나간 사람처럼 쳐다봐서
“아, 얘가 나한테 반했구나”
생각했다는데…
조금 무안했지만
그렇다고 해줌.
굳이 진실을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넋이 나간
초점 잃은 눈빛이
임팩트가 있었나 봄.
누가 어떻게 만났냐고 물으면
지금도 신나서 얘기하는데
그때마다 저 얘기는 꼭 함.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맞장구 쳐줌.
이렇게 만나
결혼까지 해서
지금은 중학생, 초등학생의 엄마 아빠임…
여지껏 이십 년 다 되어 가도록
그때 그 순간의 말 못 할 비밀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음.

가끔 아내가 흘겨보고 눈 부라릴 때,
혼자 속으로 생각함.
‘내가 사물함 주인만 제대로 알았어도…’
‘쪽지만 제대로 줬어도……’
할 때가 있음. ^^;
지나고 나니
이것도 다 추억이고
그런 것 같음.
그리고 이건
아내에겐
영원히 비밀로 유지할 거임.
(여기까지 읽은 분들도 비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