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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사각지대에 있던 초등학생, 도서관 선생님이 건넨 100권의 책

Profile surisuri
lv.114
감동
조회 31 댓글 0 좋아요 0 2026.01.24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밥을 먹고 있는데, 한 아이가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일상적이지 않았다.

아이는 너무 예뻤다. 그런데 동시에 너무 지저분해 보였다.
옷은 꼬질꼬질했고, 언제 씻었는지 모를 정도였으며, 목에는 아파트 열쇠가 덜렁 걸려 있었다.
‘저렇게 예쁜 아이를 세상에 저렇게 내보낸 부모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했던 건 식판이었다.
밥을 한가득 담아 놓고 먹고 있었는데, 성인 남성인 내 식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았다.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
‘저 아이, 혹시 우리 학교 학생 아닌가?’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저학년 교실을 기웃기웃하며 아이를 찾았다.
1학년이었다.

나는 담임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저 학생 가정환경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왜요?”
“교회에서 봤는데… 조금 일상적이지 않은 느낌이어서요.”

선생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말하기가 좀 곤란한데요… 사실 저 아이는 지금 혼자 살고 있어요. 아버지는 예순이 넘으신 고령이신데 지방에 일하러 가 계시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셨다고 들었어요.”
“아… 그래서 그랬군요. 그럼 평소엔 누가 돌봐주나요?”

담임선생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책상 위에 놓인 출석부를 괜히 한 번 넘기며 숨을 고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딱히요… 정해진 보호자는 없어요. 아버지가 내려가 계실 땐 아이 혼자 지내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침에 혼자 일어나 학교에 오고, 수업 끝나면 바로 집에 가고요. 저희도 계속 마음이 쓰였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교회에서 보았던 아이의 모습이 하나씩 겹쳐졌다.
목에 걸린 아파트 열쇠, 지나치게 많은 밥, 어른보다 더 급하게 먹던 모습.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는 말이 그 모든 장면에 이유를 붙여 주는 것 같았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그때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었다.
복지의 사각지대가 곳곳에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선생님, 수업 끝나면 그 아이를 도서관으로 보내 주세요.”

수업이 끝난 뒤, 담임선생님은 아이와 함께 도서관으로 왔다.
나는 아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 나는 도서관 선생님이야. 오늘부터 수업 끝나면 여기 와서 나랑 같이 놀래?”

그날부터 우리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1학년 중반이 지났는데도 아직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 한글도 가르치고 받아쓰기도 하고, 읽고 쓰고, 책도 읽어 주었다.
거창한 건 없었다. 그냥 함께 놀았다.

그때 사귀던,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에게 부탁해 아이를 처가에서 씻게 하고, 빨래도 해 주었다.
내가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했던 것 같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찾아가 읍소했다.
“공식적인 복지 대상은 아니지만, 받을 수 있는 도움이나 지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아이의 존재를 알렸다.

부녀회장님을 찾아가 사정을 말씀드렸고, 마음이 움직이신 회장님 덕분에 주민들이 돌아가며 반찬을 해 주셨다.

이런 일을 할 때면 나는 정말 뻔뻔해진다.
동료 교사에게는 당당하게 말했다.
“선생님, 따님 입던 옷 좀 주세요.”
교회에 가서는 치과를 운영하시는 분께 부탁했다.
“진료 봉사 좀 해 주세요.”
교장 선생님께도 말했다.
“이 학생, 점심 무료로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렇게 석 달쯤 지났을 때, 아이의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10만 원이 든 봉투를 내밀며 고맙다고 하셨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3~4개월에 한 번씩 모습을 보이셨다.

우리는 그렇게 1년 넘게 지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도서관에 와서 함께 책을 보고,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고, 수다를 떨었다.
구구단을 외우고, 동요를 부르고, 숙제도 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켠은 늘 무거웠다.
저녁이 되면 함께 밥을 먹고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면서,
‘오늘도 저 아이는 혼자 잠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혼자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잠드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2년쯤 지났을 무렵, 나는 사정상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아버지가 오셨을 때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아버님,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 주세요.
혹시 아버님이 출타하셨을 때 아이가 고아원에서 지내는 건 어떨까요?
요즘 고아원은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잠시 머물다가, 아버님이 원하실 때 언제든 다시 데려갈 수 있습니다.
제가 이제 멀리 떠나게 되어 아이를 혼자 두는 게 마음에 걸려서요.
제가 아는 분을 통해 아이 사정을 말씀드렸는데, 아버님 뜻에 따라 언제든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반응이 걱정됐지만, 오히려 가능하냐며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이사 가던 날, 나는 아이에게 책 100권을 선물했다.
지금 읽을 책부터, 조금 더 자라서 읽을 책까지 차곡차곡 골랐다.

그리고 모든 책의 첫 장에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연화에게,
이 책은 내가 읽고 너에게 꼭 주고 싶었던 책이야.”

100권의 책에,
100개의 추천 이유와
100개의 나의 사연과
100개의 작은 해결책을 담았다.

그 후로도 종종 연락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 전화를 돌리며 아이를 살폈다.
가끔은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아버지와 함께 이사를 갔고,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연락이 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내 번호를 찾았다고 했다.

“선생님, 저 연화예요. 저 대학생 됐어요.”

나는 한참을 대견하다고,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애써 참으며 통화를 이어갔다.

연화가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이 주신 책 다 읽었어요.
밤에 무서울 때, 고아원에 있을 때, 친구랑 싸웠을 때, 서러울 때, 그리울 때마다 책을 꺼내 봤어요.
지금은 이사 다니면서 책들이 없어졌지만, 마지막까지 남은 책은 ‘사랑하는 아빠’ 에요.
정말 고마워요, 선생님.

저… 문헌정보학 전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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