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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떠나보낸 뒤 7년, 딸이 엄마에게 보내는 가장 늦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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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철없이 뛰어다니던 초등학교 시절을 온몸으로 돌봐주신 어머니.
놀다 넘어져 턱에서 피가 철철 흐르던 날, 놀란 얼굴로 나를 들쳐 업고 30분 거리 병원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시던 어머니의 숨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합니다.
몸이 많이 아팠던 중학교 시절에도 늘 곁에 계셨습니다.
아파서 음식을 먹으면 다 토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때, 혼자 먹지 않겠다며 내 옆에 앉아 함께 굶어주고 밤새 간호해 주시던 어머니.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학교에 가기 싫어 신발을 질질 끌며 신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는 “우리 오늘 땡땡이칠까?” 하시며 놀이공원으로 데려가 주시던 어머니.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하던 나를 위해 가장 멋지게 차려입고 학교로 찾아와, 제대로 대처하지 않던 선생님들에게 당당히 항의하고 그 아이들을 강제 전학 보내셨던 어머니. 그날의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생애 첫 이별을 겪고 이불 속에서 숨죽여 울던 밤,
이불을 살며시 비집고 들어와 꼭 안아주시며
“이별은 참 쉽지 않지. 마음껏 울어도 돼.”
그 한마디로 나를 다시 숨 쉬게 해주셨던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발인 자리에서
“여보, 걱정 마요. 내가 우리 윤주 잘 키울게. 내가 윤주 잘 지킬게.”
목이 터지도록 울며 약속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제 인생에서 가장 아픈 장면입니다.
고3,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지쳐 있던 나에게
“대학보다 네가 힘들지 않은 게 더 중요해.”
그 말 한마디로 제주도 여행을 데려가 주셨던 어머니.
입시 결과가 나왔을 때는 나보다 더 기뻐하며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
혼자 힘들게 모아온 돈을 내게 모두 내어주며
“엄마가 다 해줄게.”
그렇게 말하시던 어머니의 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잘되길 바라며 기도하시던 어머니.
돌아가신 아버지께
“내가 잘하고 있는 거 맞죠? 아직 많이 부족하죠…”
울면서 기도하시던 어머니.
그 작고 예쁜 손이 나 때문에 망가져 가는 걸 보며, 나는 평생 잘 살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습니다.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간암 진단을 받으시고,
아프고 힘든 치료와 수술을 받으시면서도
“괜히 엄마가 아파서 네가 한창 놀 나이에 고생시킨다.”
미안하다며 매일 우시던 어머니.
그리고 어느 날,
“딸, 같이 잘래? 오늘은 좀 외롭다.”
나를 꼭 안고 잠드신 채, 다시는 눈을 뜨지 않으셨던 어머니.
외로웠던 아홉 살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신 어머니.
홀로 아버지와 살던 나를 처음 만났을 때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네가 윤주구나.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지금 널 만나서, 엄마는 정말 행복해.”
엄마, 엄마를 그리워한 지 벌써 7년이 흘렀네요.
저는 이제 결혼도 하고, 예쁜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직은 서툰 초보 엄마지만,
엄마가 제게 해주셨던 것처럼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세상을 마음으로 보라는 엄마의 가르침,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엄마도 지금 어딘가에서 마음으로 저를 보고 계시겠죠.
저도 엄마를 마음으로 기억하고, 마음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살아생전 처음으로 ‘엄마’라는 사람의 손길을 느꼈는데,
그 따뜻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요즘 세상이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로 시끄러워, 기일인데도 찾아뵙지 못하네요.
엄마가 주신 그 사랑 덕분에, 저는 지금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엄마를 만난 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었고,
엄마를 제 곁으로 데려와 준 아빠 또한 제게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엄마 아빠에게 받은 사랑,
이제는 제 아이에게,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겠습니다.
그날처럼, 나 혼자 눈을 떠야 했던 아침처럼
오늘도 하늘은 흐립니다.

엄마,
너무 보고 싶고
너무 사랑하고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