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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같은 지하철… 책 한 권이 만든 인연
같은 시간, 같은 지하철… 책 한 권이 만든 인연

나 지하철에서 진짜 소설 같은 일을 겪었어.
나는 지하철 탈 일이 있으면 주로 오후 세 시쯤 타거든.
그 시간대에 유난히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하나 있었어.
늘 같은 칸, 같은 자리 근처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여자분이었지.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어.
예전에 어디선가 본, 유럽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책 읽는 사진 같은 느낌.
괜히 현실이 아닌 장면처럼 보였어.
옷차림도 그 분위기랑 잘 어울렸어.
과하지 않은데 단정하고, 묘하게 멋있는.
‘21세기형 지성인’이라는 말이 있으면 딱 그분 같았어.
솔직히 말하면, 그때부터 나도 괜히 의식하기 시작했어.
지하철 탈 때마다 나도 책 한 권씩 챙겨 가서 읽었지.
그분은 전혀 신경도 안 썼겠지만, 혼자서 말도 안 되는 경쟁심 같은 걸 느끼면서 엄청 집중해서 읽었어.
어느 날은 이슬아 작가의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있었어.
이미 여러 번 읽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 그냥 습관처럼 들고 탄 거였지.
그렇게 한참을 읽고 있는데 누가 옆자리에 앉는 기척이 느껴지더라.
괜히 더 집중하는 척하면서 책에서 눈을 안 떼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내 어깨를 톡톡 치는 거야.
고개를 들었더니, 그 책 읽던 그 여자분이 바로 옆에 서 있는 거였어.
그 순간 너무 당황했는데, 이상하게도 처음 보는 사람 같지가 않았어.
말을 한 번도 섞어본 적은 없는데,
매일같이 혼자 마주치던 사람이라 그런지 마음속에서는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졌달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해버렸어.
그분도 내가 인사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살짝 놀란 표정이었어.
지금 생각하면 좀 창피해.
그런데 그분이 내 책을 보더니, 그거 자주 보는 것 같은데 재밌냐고 묻는 거야.
내가 잠깐 정신을 가다듬고
“네, 제가 좋아하는 책이에요”라고 답했더니, 이슬아 작가를 좋아하냐고 하더라.
본인은 아직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그때는 솔직히 속으로 ‘그래서…?’ 싶었어.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이 읽고 있던 책이 시집이었거든.
갑자기 그분이 자기 책을 내밀면서,
이슬아 책을 읽어보고 싶다며 서로 바꿔서 읽어보지 않겠냐고 하는 거야.
너무 얼떨결이었고, 원래 거절도 잘 못 하는 성격이라 그냥 “아… 네” 하고 내 책을 건네줬어.
그분은 다음 역에서 내렸고, 나는 그분이 준 책을 넘기다가 앞표지에서 깜짝 놀랐어.
책 다 읽으면 연락하라면서 연락처가 적혀 있었거든.
책은 일주일쯤 만에 다 읽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어.
괜히 별 생각이 다 들더라. 혹시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괜히 연락했다가 곤란해지는 건 아닐까.
내 책을 왜 그렇게 쉽게 줬나 싶기도 했고.
그래도 서로 책을 바꾼 게 마음에 걸려서,
그냥 용기 내서 “지하철에서 주신 책 잘 읽었어요”라고 문자를 보냈어.

보내고 10분도 안 돼서 답장이 왔어.
자기도 내 책 잘 읽었고, 연락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리고 혹시 다음 날쯤 만나서 책을 서로 돌려줄 수 있겠냐고 하더라. 그렇게 만나기로 했어.
다음 날 약속 장소로 가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또 그분이 타고 있는 거야.
사실 늘 같은 지하철을 타던 사람이니까 이상할 것도 없었는데, 괜히 또 웃음이 나더라.
서로 당황해서 웃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책을 돌려받았고,
그분이 약속했던 역에서 내려서 근처 카페라도 가자고 했어.
카페에서 얘기하다 보니, 그분이 내가 연락 안 할까 봐 꽤 불안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원래도 사람들한테 책 바꿔 읽자고 자주 그러냐고 물었는데,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대.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 말 듣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흔들렸어.
그날 이후로 우리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어.
웬만한 친구들보다 더 자주 본 것 같아.
가끔은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그분이 먼저 인사해줬어.
같이 밥도 먹고, 서점에 가서 서로 어울릴 것 같은 책을 골라주기도 했지.
그리고 오늘, 그분이 나한테 고백했어.
처음 봤을 때, 지하철에서 책 읽고 있던 내 모습이 너무 좋아서 계속 마음에 남았다고 하더라.
원래는 낯을 많이 가려서 모르는 사람한테 말도 잘 못 거는데,
이상하게 내가 자꾸 생각나서 용기 내서 말을 걸었다고.
나도 사실 만나면서 내가 그분을 좋아하는 건지 헷갈리고 있었는데,
고백을 듣는 순간 확실히 알겠더라.
아, 나 이 사람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냥 주저리주저리 적어봤어.
이런 이야기 담긴 책 있으면 진짜 바로 사서 읽을 텐데, 혹시 떠오르는 책 있으면 추천해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