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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소설이길 바랐다: 우리 집엔 엄마가 둘이 살고 있다
이게 소설이길 바랐다: 우리 집엔 엄마가 둘이 살고 있다

우리 집에는 엄마가 둘 있다.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엄마가 둘이다.
한 명은 나의 친엄마이자 아버지의 첫 부인이고,
다른 한 명은 집에 함께 사는 여자지만 법적으로는 부인이 아닌 사람이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골반 근처 고관절이 좌우로 크게 손상된 큰 사고였다.
1년 가까이 휴직을 낼 정도였고, 치료와 재활에 모든 시간을 쏟아야 했다.
고관절이 망가져서 집안일은커녕 혼자 씻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집에 와서 간병과 집안일을 도와주셨지만,
집이 너무 크고 힘들다며 결국 포기하고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가게를 운영하느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고,
나는 외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집에 거의 있지 않았다.
결국 간병과 집안일을 함께 맡아줄 사람을 구하게 됐다.
그분이 처음 일을 시작한 날이 어머니의 퇴원일이었고,
나도 그날 얼굴을 보게 됐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였고, 중성적인 인상에 잘생긴 편이었다.
운동선수 같은 체격이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청 소속 운동선수였다가 어깨 부상으로 그만두었다고 했다.
지금은 트레이너 일을 병행하며 간병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처럼 중증 환자 간병은 수입이 괜찮다고도 했다.
어쨌든 어머니에게 매우 싹싹했고, 집안일도 도맡아 했다.
어머니는 골반 근육 문제로 기저귀 처치까지 필요했는데,
그런 일도 군말 없이 잘해줬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전부 대신해준다”며
정말 고마워했고, 선물로 가방까지 사줄 정도였다.
어머니의 치료와 재활이 거의 끝날 즈음,
나도 종강이라 집에 와 있었다.
그 사이 두 사람이 친해진 건지,
간병인 그분이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오기 시작했다.
종강 후 집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최소 세 번은 볼 정도였다.
우리 집은 2층 주택이고,
내 방은 2층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다.
바로 아래층에는 아버지의 작업실이 있는데,
아버지가 좋아하는 물건들만 있어서
어머니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다.
아버지는 그 방에서 책을 읽거나 야구를 보시곤 했는데,
방음이 잘 안 돼서 조용히 있으면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어느 날 오전, 집에서 자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간격으로 ‘끼익, 끼익’ 소리가 났다.
처음엔 아버지가 오셨나 보다 하고 넘겼다.
그런데 이런 일이 점점 잦아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래층에서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너무 반복되니 묘한 예감이 들었다.
한 달 가까이 이런 일이 이어진 끝에,
나는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방에서 나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작업실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규칙적인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쁜 숨소리, 낮은 신음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그 순간,
아무리 경험이 없어도
이 상황이 무엇인지 알 수밖에 없었다.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버지가 올 시간도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이지’
‘그런데 현관에 그 사람 신발은 왜 있지’
머릿속이 완전히 혼란스러웠다.
결국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벌거벗은 채 의자 위에 포개어 앉아 있는
어머니와 그 여자가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굉장한 미인이시다.
동네에서 소문날 정도였다.
당시 어머니는 지금 할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 가게에서 주방 일을 하며 가게를 잇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반해 적극적으로 다가갔고,
결국 그렇게 내가 태어났다.
그래서 어머니는 결혼도 너무 일찍 했고,
연애라고 할 만한 경험은 사실상 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머니 인생에서 남자는 아버지가 유일했는데,
그 여자에게서 처음으로
남자가 해줄 법한 힘과 돌봄을 받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그 감정에 빠진 건지,
아니면 그 여자가 어머니의 얼굴에 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둘은 약 6개월 동안 연인이 되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리고 이 관계는
아버지에게도 금방 들켜버렸다.
아버지도
간병인과 어머니가 지나치게 가깝다고 느껴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이런 관계일 줄은 몰랐다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으로 가게를 한 달이나 닫아야 할 정도였다.
결국 나, 아버지, 어머니, 그 여자
네 사람이 마주 앉게 됐다.
나는
“아무리 일찍 결혼했어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냐”고 소리쳤고,
어머니는
“이런 설렘은 살면서 처음 느껴본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시킨 게 내 잘못”이라며 자책했고,
그 여자는
“어머니가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상황은 더 이상해졌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남편과 함께하는 것도 좋고,
이 여자와 함께하는 것도 너무 좋다.
그런데 셋이 함께할 수는 없는 거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의 눈빛이 달라지는 게 보였다.
나는 그날로 집을 나와 자취방으로 도망쳤다.
졸업이 남아 있어서
방학 동안 공장 일을 하며 장학금으로 버텼고,
군대에 가서 한 번 더 도망쳤다.
지금은 복학해 다시 학교를 다니고 있다.
부모님과는 간간이 연락만 하고 지내는데,
그 여자도 지금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같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이 관계에 만족한다”며
“가족으로 생각해주면 안 되겠냐”고 말한다.
주변에서 손가락질한다는 말에는
“예전에도 처첩이 함께 살던 시절이 있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내가
“내가 부인 둘이랑 산다고 하면 좋겠냐”고 물으면,
“그럴 능력이 있으면 그러라”고 한다.
도대체 이 가족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부모님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장황하게 길게 썼다.
읽어줬다면 정말 고맙다.
이게 소설이길 바란다.

덧붙이자면,
올해 설날 이야기도 있다.
처음엔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고
집에 갈까 고민했다.
어차피 가을에 졸업이고,
취업이든 시험이든 준비하려면
가족과 완전히 틀어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설날에
셋이서 설빔 맞춰 입고 찍은 사진을 보내며
“네가 없으니까 가족사진 같지가 않다”는 문자가 왔다.
그걸 보는 순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집에는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