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추천
7년 9개월 동안, 한 사람을 후원했습니다.
7년 9개월 동안, 한 사람을 후원했습니다.

7년 9개월 동안, 한 사람을 후원했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저는 여러 사람을 두루 돕는 것보다, 한 사람에게 꾸준히 마음을 나누는 쪽이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한 여자아이를 오래도록 후원했습니다.
무려 7년 9개월 동안이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달 50만 원씩,
그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보냈습니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등록금을 보내면서
비로소 제 마음의 한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지요.
그 녀석이 제게 장난스럽게 “언젠가 이 돈 꼭 갚겠다”고 말하던 때도 있었고,
“이번 등록금은 제가 직접 벌어서 내겠습니다”라며
어느새 의젓하게 자라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저,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잠시 곁을 내준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돈으로 돕는 것 외에는 해준 게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시간들이 제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행복했던 시절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평생 그 아이를 만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아이도 아마 저를 모를 겁니다.
그런데 오늘,
예전에 ‘사무실’이라 부르던 오래된 주소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한마디에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제 아이가 대학에 간 것처럼 가슴이 벅찼습니다.
비록 8년은 채우지 못했지만,
7년 9개월 동안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9년,
그 아이는 취업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제 딸은 아니지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세상살이의 보람이 밀려왔습니다.
삼십 대 초반부터 8년 가까이,
부족한 형편 속에서도 매달 50만 원씩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생활이 빠듯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한 번 시작한 건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약속 하나만큼은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자라
대학에 입학하고,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마흔넷이 되었고,
진짜로 제 아들도 하나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편지를 몇 번 받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이 세상에는 상처를 주는 사람도,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 아이가 그것만 기억해준다면,
제가 했던 일이 조금은 의미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이제 제게는 두 아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여섯 살짜리 장난꾸러기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 속으로 첫발을 내딛은 든든한 딸입니다.
새벽녘, 잠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딸아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가 보낸 취업 소식이
아직도 제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모난 데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렴.
아빠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