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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유치원 짝꿍 사랑, 드디어 결혼합니다
23년 유치원 짝꿍 사랑, 드디어 결혼합니다

유치원 짝꿍에서 시작된 23년 러브스토리
나와 내 남자친구의 인연은 유치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짝꿍이 된 뒤, 이유도 모른 채 매일같이 손을 잡고 다녔다.
중·고등학생도 아니었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어릴 땐 친구들이 “너희 사귀는 거야?” 하고 물으면 필사적으로 “아니야!”를 외쳤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왜 아니래? 내가 싫어?” 하고 서로 발광했다.
고등학교에선 여고·남고로 갈라졌지만, 아침엔 같이 버스 정류장으로,
야자나 학원 끝나면 또 같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참고로, 우리 집은 202동 601호, 남자친구는 같은 동 901호. 완전 ‘엘리베이터 커플’이었다.
군대 전, 그 난리의 카페 사건
남자친구에겐 누나와 형이 한 명씩 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부모님은 귀농을 하셨고, 그는 형 집에 얹혀살았다.
왜 그렇게 형 집 청소를 열심히 해줬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다 군 입대 전, 느닷없이 “헤어지자” 선언.
카페에서 울고 있는데, 우연히 지나가던 그의 누나가 들어와서 상황을 듣더니
주먹질까지 하며 “기다려 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뭐 하는 거냐!”며 버럭.
사실 나도 그때 좀 지겨웠다. 유치원 때부터 십수 년… 이 정도면 웬만한 드라마 시즌도 끝났을 시기다.
순결 여행(?)과 얼떨결 첫 뽀뽀
군대 가기 전 여행을 제안했다. 거짓말 시나리오까지 짜고 떠났는데,
남친 누나가 X돔을 챙겨주는 바람에 황당.
그러나 설악산 울산바위 등반 후 체력 방전, 우리는 코 골며 강제 순결을 지켰다.
첫 뽀뽀 역시 엉겁결에 했다.
고등학생 때 벤치에서 삼각김밥 먹다 고개를 홱 돌리는 바람에
입술이 1mm 닿았고, 그는 “엄마야!”라고 외쳤다.
그 뒤로 아무 일도 없었다. 얘는 욕구를 공부로 푼 듯했다.
1천만 원과 커플링의 비극
전역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남자친구. 난 그 돈이 내 선물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모아둔 천만 원을 들고 어학연수를 갔다. 난 미국도 못 가봤는데.
첫 월급 때 커플링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건 구두 한 켤레.
“이거 신고 다른 사람 만나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혼 얘기는 미궁 속으로
스물일곱 살 때, 엄마가 그에게 “결혼할 거야 말 거야?”라고 묻자
“저 이미 아들 같지 않아요?”라는 동문서답.
결혼 얘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시어머니께서 “네가 사고 쳐도 괜찮다”며 인진쑥환까지 챙겨줬다.
순간 “아드님 남자 구실 잘 못하는 거 아닐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흘러간 세월
연애 중에도 알콩달콩보다는 친구 같은 분위기.
하지만 점심마다 “밥 먹었냐?”라는 다섯 글자가 이상하게 반가웠다.
데이트 대신 반찬 나눠 먹고, 명절엔 가족 여행을 보내드리고,
그러다 거지 돼서 여름휴가조차 못 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연휴를 앞두고 정장을 빼입은 그가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내 손을 꼭 잡았다.
“우린 사귀자고 한 적도 없는데 이렇게 오래 만났네. 좋은 사람이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속주머니에서 꺼낸 반지 케이스.
나는 당연히 커플링이라 생각했는데, 그 한마디가 날 멍하게 했다.
“결혼하자, 이제.”
23년 만에 받은 첫 반지가 결혼반지라니.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 아빠! 나 프러포즈 받았어!”를 외쳤다.

이제는 부부로
동생이 “그럼 이제 밤에 자러 여기 안 와도 되는 거야?”라고 묻는 바람에
괜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집을 구하고, 서로 모은 돈을 계산하고, 결혼 준비를 시작한다.
하도 오래 만나서 결혼이 특별할까 싶었는데, 막상 하게 되니 설렌다.
이쁘게 잘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