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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 아침, 아빠가 하늘로 떠난 날
결혼기념일 아침, 아빠가 하늘로 떠난 날

저희 엄마와 아빠는 서로의 첫사랑이셨습니다.
외할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엄마만을 바라보며 결국 결혼하셨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저를 낳고, 3년 뒤 여동생을 낳았습니다.
회사에서 해주는 합동결혼식으로 하얀 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고, 경주로 단체 신혼여행을 가셨지만 두 분은 무척 행복하셨습니다.
아빠가 출근할 때마다 엄마는 아빠를 안아주셨고, 저희가 성인이 된 후에도 두 분은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용돈을 주시며 가족 기념일 선물을 준비하게 하셨고, 케이크와 선물 증정식을 항상 했습니다.
특히 5월은 어버이날(5월 8일)과 부모님 결혼기념일(5월 10일)로 바쁘게 보냈습니다.
중학생 때, 엄마가 관절염으로 여러 번 수술을 받으셨고 힘든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때 아빠는 엄마를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셨고, 엄마는 그 몸 상태로 검정고시를 준비해 대학에 입학하셨습니다.
엄마가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 무렵, 아빠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셨고, 결과는 폐암 말기였습니다. 이미 뇌까지 전이되어 의사는 2개월 정도만 예상했습니다.
믿기 힘든 소식이었지만, 가족은 마음을 다잡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힘든 항암·방사선 치료 속에서도 아빠는 가족을 위해 버텨주셨고, 엄마는 최선을 다해 아빠를 간호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1년, 2년이 지났고, 엄마는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항암 치료 중에도 엄마를 학교까지 데려다준 아빠에게, 졸업 가운과 학사모를 씌워드리며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아빠에게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라고 묻자, “비행기를 한 번도 못 타봤다”고 하셨습니다.
그해 봄, 가족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많은 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버이날이 된 날, 평소보다 잘 드시고 행복해 보이셨지만, 그날 밤 아빠는 급히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서 “아버님이 밤새도록 어머님을 찾으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엄마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던 아빠를 꼭 안아주며 “사랑해”라고 말했고, 아빠는 눈을 한 번 깜빡이며 “고마웠어”라는 눈빛을 보낸 후 눈물을 흘리며 하늘로 떠나셨습니다.
그날은 5월 10일, 두 분의 결혼기념일 아침 8시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3년을 버틴 것은 기적”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었습니다.
지금도 매년 5월이 되면 슬프고 힘들지만, 여전히 아빠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