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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고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고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후반까지 간간이 알바하면서 지냈다.
행사 스태프 알바, 키즈카페 알바 등등 딱 내 용돈 쓸 정도만 벌어서 살다가,
점점 나이가 먹고 나도 제대로 된 직장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해서
28살부터 공무원 시험 공부를 했다.
3년 차까지는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점수가 평균 80점쯤 나오는데, 이 점수로는 합격할 수 없었다.
그렇게 4년 차부터는 슬슬 공부하기가 싫어지더라.
다 아는 내용 같고, 근데 막상 시험 보면 점수가 더 떨어졌다.
4년 차에도 떨어지고, 어느덧 내 나이도 31살이 되었다.
남들은 그동안 직장 다니면서 대리도 달고, 연애도 하고, 결혼 준비도 한다는데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 비참하게 살았다.
5년 차 시험을 이틀 앞두고 알고 있었다.
솔직히 난 이번 시험도 합격하지 못할 거라는 걸.
그래서 도서관 사물함에 있던 책들 다 빼 오고,
시험 전날은 집에서 공부를 마무리했다.
역시나 불합격했고,
나는 32살이 되어서야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기로 했다.
부모님은 내가 책을 집에 다 가져다 놓은 걸 보고
공부 더 안 하는 거냐고 물어보시더라.
그냥 “어…”라고 한마디만 했다.
공부하는 동안 내가 부모님한테 말 걸어도 대답도 안 하고 방으로 들어가고,
밥도 어쩔 때는 같이 안 먹으려 해서
나에게 더 이상 별말 안 하시더라.
특히 부모님이 뭐 물어봐도 아무 대꾸도 안 하고
묵언 수행하듯이 해서
“제발 대답이라도 좀 해라”라고 할 정도였다.
그냥 이렇게 된 게
어릴 때부터 가정불화와 아빠의 사업 실패로 길바닥에 내앉게 되고,
엄마의 외도로 집까지 외도한 남자의 와이프가 찾아오고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망가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모에 대한 원망이 컸다.
그렇게 공부를 접고, 한동안은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다가 집에서 부모님 숨소리만 들어도 답답해서
부모님이 집에 있을 때는
집 근처 공원에 가서 걷고 들어왔다.
근처에 호수공원이 있었는데,
해질녘에 가면 호수 위로 비치는 해가 너무 멋있었다.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그 풍경에 위로받고 돌아왔다.
밖에 나가서 바람 쐬고 걷다 보니까
생각도 정리되고,
마음도 조금은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지방직 시험 끝나고 그렇게 1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용기 내서 노가다라도 해 보기로 했다.
인력사무소에 새벽부터 계속 나가니까
하루는 “오늘 건설 현장 청소 있는데,
그거라도 가서 열심히 해 보라”고 해서 갔다.
거기서 당연히 느릿느릿 답답하게 있으니까
아저씨들이 막 뭐라고 하더라.
근데 그 옆에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와서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하면서
일을 지시해 주는데,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묵묵히 일했다.
키도 165 정도 되고,
노가다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인상이 세 보이지도 않았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하청업체에서 혼자 사업자 내고 일하는 사람이었고,
딱히 회사라고 직원이 따로 있지도 않은
그냥 사업자를 가진 사장님이었다.
기초 공사만 하시는 분이었고,
그래도 내가 조용히 묵묵히 일한다고
“내일도 나오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 날도 일찍 나와서 일하고 있으니까
점심에 백반 뷔페 맛있는 데 있다고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하더라.
딱히 말이 많으신 분도 아니었고,
왜 여기 왔냐고 해서
공무원 시험 떨어져서 왔다고 하니까
그냥 “그래” 하면서
지금처럼 조용히 열심히 일하라고 하더라.
자기도 조용히 성실히 일한 사람인데,
일하다 보면 네 밥벌이도 가능하고,
자기는 바닥 기초 공사만 하고 빠지는 사람이라고.
노가다도 종류가 다양하다면서
기초 공사만 하는 사람,
배관 공사만 하는 사람,
보도블록만 까는 사람도 있다고,
그중에 너가 적성에 맞는 일 하면 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일단은
자기 현장 앞으로 10일정도 더 공사하는데
나와서 지금처럼 청소하고
시멘트나 철근 같은 자재들 나르라고 했다.
그렇게 10일 일하고 150만 원 벌었다.
그 사장님이
“나도 일이 잘 없긴 한데,
일 있을 때 부르면 나올 거냐”고 하더라.
그래서 일 있으면 불러 달라고 했다.

사장님도 일이 많지는 않아서
다른 현장에 일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더라.
나랑 그 사장님은 광역시에 사는데,
사장님은 보통 시외 쪽으로 일을 많이 다닌다고
이번에 군으로 일하러 가는데 나올 거냐고 해서
가겠다고 했다.
5시 30분까지 자기 집 근처로 오면
자기가 태우고 가겠다고 해서,
지금은 그 사장님 따라 일 다니고 있다.
가끔 일 못 하면 혼내기도 하시는데,
크게 혼내지도 않고
같이 차 타고 1시간 정도 가는 동안에도
라디오만 듣지, 별말 안 하신다.
그리고 밥 먹을 때
자기도 어렸을 때 힘들었다고,
자기도 키도 작고 체격도 작아서
노가다하기에는 부적합했는데
진짜 성실하게 일하다 보니까
그래도 누구한테 손 벌리고 살지는 않고
자식들 대학까지 졸업시켰다고 하더라.
너는 보니까 순하고
조용히 일하는 스타일이라
일은 좀 못해도
그런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더라.
막 말을 엄청 따뜻하게 해 주는 편은 아닌데,
그냥 같이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은 편하다.
그래도 요즘은
일하다 보니까 우울함도 덜하고,
돈도 벌고,
좋은 것 같다.